2015년 6월 14일 일요일

박달나무의 숨은 진실



일반적으로 신화는 어떤 형태로 든 역사적인 진실이 내포 되어 있다. 다만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마치 오래된 암호를 풀듯이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그 정확한 의미를 알 수가 없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단군 신화이다.
단군 신화는 단순히 신화를 너머서 고조선의 탄생을 한편의 서사시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 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홍익인간[弘益人間])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여기를 신시(神市)라고 하니 이로부터 환웅천왕이라 불렀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백 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고 인간세상에 살며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면서 항상 신웅(환웅)에게 빌기를, “원컨대 (모습이) 변화하여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신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20개를 주면서 이르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아니하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기(忌)[5]하였는데 삼칠일(三七日 : 21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기하지 않아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항상 신단수 아래서 아이를 가지기를 빌었다. 이에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해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하였다.
당고(唐高, 요[堯])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칭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에 옮겼으니 그 곳을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며달(今㫆達)이라고도 한다. 나라를 다스리기 1천 5백 이었다.
주(周)나라의 호왕(虎王,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阿斯達)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수(壽)가 1천 9백 8세이었다 한다.

즉, 곰족과 호족이 경쟁을 하다 호족이 져서 내 쫓기고 웅족만이 남아서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단군의 성씨이다. 일반적으로는 단군을 곰족의 우두머리로, 조선은 모계 사회로 그려진다. 왜 단군이 아버지의 성을 안 따르고 어머니의 성을 따랐냐고 물어본다면 아마도 조선이 모계 사회라서 그렇다고 답변을 할 것이다. 어쨌든 단군의 성씨는 곰족이니까 웅씨가 된다.
단순히 설화라고 치부할지도 모르지만 홍순 문화에 나오는 여신상과 곰발의 존재로 보아 웅녀는 신존 인물일 가능성이 있고 또 곰이 가지는 중요성도 상당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과연 역사적으로도 웅씨가 과연 존재했을까?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지금은 웅씨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문헌에는 과연 나오기는 할까?
우연찮게 찾은 결과인데 알고 보니 중국 춘추전국 시대 초나라 왕족의 성씨가 웅씨였다. 너무나도 뜻밖의 발견이었다. 초나라는 BC 1000년 경에 존재했던 나라이니 만약 조선과의 연관성을 찾는다면 아마도 기자 조선과 연결 고리를 찾아야할 듯 싶다. 그렇다면 초나라는 기자조선이 될 수 있을까?
기자 조선의 임금 수는 42명이었다. 초나라는 44명이지만  사실상 43대 웅부추 대에 이르러서 망했기 때문에 43명으로 봐야 한다. 왕으로 기록된 임금수는 42명이며 그 마지막은 애왕이었다. 기자조선의 마지막 42대 왕도 애왕이었다.
초나라의 시초는 웅역이었는데 주나라를 창건한 주 무왕의 스승인 육웅의 증손자였다. 그 공로를 인정 받아 자작의 작위를 받고 땅을 하사 받았는데 그것이 초나라의 시초였다. 그러고 보니 웅역이 증조부 때문에 작위를 받은 것이라면 추존까지 더해 사실 초나라의 시작은 시조인 조부인 육웅으로 봐도 상관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역시 단군조선의 47대와 같아진다.
더군다나 단군은 14세에 비왕이 되었다. 하지만 1세가 사실은 1세대를 말하는 것이라면 초나라의 상황과 비슷해진다. 초나라가 15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법 강성해지기 시작하면서 칭호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왕을 칭한 것은 18대이다. 이 왕이 초나라의 무왕이며 이는 주나라의 환왕 때이다. 가만, 환왕이라면? 혹시 환웅이라는 착각이 들게 만들게 끔 이름이 유사하다. 한자도 같다. 
단군은 그 후 24세나 더 비왕을 유지 했다고 한다. 초나라도 웅부추 대에 멸망한다. 43대이다. 하지만 왕이라는 칭호는 42대까지만 사용한듯 하다. 정확히 24대이다. 왕을 칭한다. 즉, 비왕한지 24대라는 의미다.
확인 사실을 하자면...... 단군의 단자는 박달나무를 뜻한다. 그만큼 박달나무가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박달나무는 중국말로 초유이다. 그 한자 그대로 네이버 한자 사전을 돌려 봤다. 그 결과 초나라의 느티나무가 나왔다.
이 정도 되면 단군조선이 기자 조선이고 기자 조선이 초나라 라는 등호가 성립이 된다.

말도 안된다고?

홍산 문화는 기원전 8000년서부터 기원전 1500년까지 지속이 되었다. 은허는 알다시피 기원전 1600년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초나라는 기원전 1000년 전 경에 시작이 되었다. 
초나라는 오, 월과 함께 장강 문명을 대표하는 국가이다. 유전적으로도 중국인과는 매우 다르다. 흔히들 묘족으로 대표가 된다. 이들이 웅씨 성을 가졌다는 것은 고조선과의 밀접한 가능성이 내포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시기적으로도 홍산에서부터 시작하여 홍산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은허로 내려와서 장강문명으로까지 뻗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신화에 보면 환웅은 무리 3천을 이끌고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하늘이라는 표현은 단군이 천제니까 하늘이고 표현을 했을 수도 있지만 남으로 이동을 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지상으로라고 표현을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본고장에서 외지로 이동을 했기 때문에 토착 세력을 흡수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겉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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